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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0-10-06 | 조회 : 126 | 추천 : 0 [전체 : 6 건] [현재 1 / 1 쪽]
이름
한국핸드볼발전재단
제목
[김동훈 기자의 "핸드볼 이야기 속으로"]_2

중동선수 한국심판 폭행사건

[핸드볼 이야기속으로] ②

 


“네? 저희 보고 준결승전 심판을 보라구요?”

김기성 심판과 김용구 심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심판은 강하게 손사레를 쳤다. 난폭하기로 유명한 중동 선수들과 관중들 앞에서 민감한 경기의 심판을 보기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준결승전은 개최국 아랍에미리트 팀끼리 맞붙게 돼 있었다.

 

김기성·김용구 두 심판은 2001년 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국제심판 자격증을 딴 뒤 첫 국제대회 참가였다. 김기성 심판은 “우리는 대한핸드볼협회를 통하지 않고 아시아핸드볼연맹에서 지명해 초청한 최초의 심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예선 몇 경기 심판을 본 뒤 4강이 가려졌다. 그런데 카타르인이던 아시아핸드볼연맹 심판위원장이 애초 스코틀랜드 심판이 맡기로 했던 준결승전을 한국인 두 심판에게 맡아달라고 한 것이다. 김기성·김용구 두 심판은 서로 “이건 아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얘기를 나눴다. 두 심판은 “우리는 아직 어리고 경력도 짧다”며 정중히 거절했지만, 심판위원장은 “이런 경기의 심판을 봐야 경력을 쌓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두 심판의 거듭된 거절에도 심판위원장은 막무가내였다.

 

두 심판은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코트에 섰다. 준결승전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연고를 둔 라이벌팀 간의 대결이었다. 두 심판은 두 팀이 빨간색 유니폼과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던 것은 기억했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두 팀의 이름은 잊었다. 대신 김용구 심판은 여당(빨간 유니폼)과 야당(파란 유니폼)으로 비유했다. 관중석은 난동을 막기 위해 철망이 처져 있을 정도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두팀의 접전이 이어졌다.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 때 두 심판은 심판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심판위원장이 두 심판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가라고 한 뒤 문을 걸어잠궜다. 그러더니 “여당(빨간 유니폼)이 올라가야 하니 야당(파란 유니폼)을 죽이라”고 했다. 두 심판은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거절했다. 하프타임 내내 실랑이가 이어졌고, 결국 후반전이 시작됐다.

 

후반은 더욱 격렬했다. 휘슬만 불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항의를 해댔다. 결국 후반 10분이 조금 지나 사달이 났다. 야당팀 공격 때 김용구 심판은 코트 쪽에, 김기성 심판은 골 라인 쪽에 서 있었다. 야당팀 선수가 슛을 시도하는 순간 여당팀 선수가 파울을 저질렀다. 김용구 심판의 휘슬이 울렸고, 프리드로우가 선언됐다. 그런데 야당팀 선수가 느닷없이 김용구 심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7m 드로우를 선언하지 않고 프리드로우를 선언했다는 항의였다. 그 순간 이번에는 사이드에 서 있던 야당팀 선수가 느닷없이 공을 김기성 심판에게 던지더니 달려들었다. 김기성 심판은 반사적인 이단옆차기로 저지했다. 이번에는 여당팀 선수들이 야당팀 선수들에게 달려들어 패싸움이 벌어졌고 코트는 아수라장이 됐다.

 

김기성 심판은 몸 싸움 과정에서 코피가 났다. 김기성 심판은 경찰들을 방어막 삼아 실신한 척 했다. 김기성 심판은 김용구 심판한테 작은 목소리로 “지금 내가 일어나면 큰 일 나니까 나는 안 일어날란다”라고 속삭였다. 대회 임원들이 김기성 심판을 부축해 경기장 밖으로 나갔고 경찰들의 호위 속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됐다.

 

문제는 코트에 남아 있던 김용구 심판이었다. 코트에 다시 나가 몰수게임을 선언해야 하는데,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워낙 분위기가 살벌하자 대기심이던 중국 심판도 코트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또다른 중국인 대기심이 혼자 나가 여당팀의 몰수게임 승리를 선언했다. 그 순간 관중들은 코트를 향해 물병 등을 닥치는대로 집어던졌다. 김용구 심판도 간신히 경기장을 빠져나와 호텔로 갔다. 그리고 호텔로 찾아온 경찰한테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다음날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김기성 심판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김용구 심판은 “그날 프로복싱 선수 마이크 타이슨의 재기전이 있었는데, 타이슨 기사는 조그맣게 실리고 심판 폭행사건이 크게 실렸다”고 회고했다.

 

사건의 파장은 컸다. 양팀 선수들 5명씩 10명이 영구제명됐다. 또 아들이 여당팀 선수였던 현직 아랍에미리트 국방장관은 이 사건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두 심판은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가고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당장 돌아갈 직항 편이 없어 싱가포르를 경유해 들어가는 항공편을 간신히 구했다. 다음날 공항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데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어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고 인터뷰 공세를 폈다. 두 심판은 두바이발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기사등록 : 2010-09-17 오후 01:44:48  기사수정 : 2010-09-17 오후 01: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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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핸드볼발전재단님이 2010-10-06 오전 9:13:00 에 작성하신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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